한국사를 이야기 할때 항상 등장하는 왕들이 있습니다.
세종대왕(이도), 고려 태조(왕건), 조선 태조(이성계), 광개토대왕(고담덕) , 등 ...
이들 중 오늘은 광개토대왕 (담덕)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1. 광개토대왕의 공식적인 호칭은 사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이다
사실 우리가 광개토대왕이라고 부르는 호칭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이라는
풀 네임을 줄여서 광개토대왕 이라고 부를는 것인데요.
국강상은 사후 광개토대왕 무덤이 국강상이라는 곳에 있다라는 뜻이고
광개토경은 영토를 크게 넓혔다라는 뜻,
평안은 말 그대로 나라를 안정 시켰다는 뜻,
호태왕은 최고의 왕이다 이런 뜻입니다,
2. 고구려에서 최대 영토를 차지한 왕은 광개토대왕이 아니다.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영토를 넓혀 고구려의 부흥을 이룩한 왕인 것은 맞지만
고구려 역사상 최대 영토를 차지 했던 왕은 광개토대왕의 증손자인 문자명왕 입니다.
문자명왕은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일궈놓은 국력을 유지한 것은 물론
고구려 북쪽에 있었던 북부여의 영토까지 병합하여 고구려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차지 하게 되었죠.
3. 광개토대왕에 대한 조명은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이루어 졌다.
668년 고구려 멸망 이후 광개토대왕에 대한 업적은 사실상 잊혀졌습니다.
게다가 광개토대왕비가 있었던 집안현 지역은 발해 멸망 이후 이민족들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추후 청나라 건국 후 이 지역에 봉금령이 내려져 광개토대왕비가 금나라 관련 비석인줄만 알았지
고구려 광개토대왕 관련 비석일거라고는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알았기 때문입니다.
광개토대왕비가 발견되기 전에는 삼국시대 백제는 근초고왕, 신라는 진흥왕, 고구려는 영양왕이
각 나라를 부흥시킨 군주라고 회자되곤 하였는데
고구려 같은 경우는 영양왕이 수나라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입니다.
4. 광개토대왕의 무덤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보통 광개토대왕의 무덤은 중국 집안현에 위치한 태왕릉이라고들 추정하지
확실하게 태왕릉을 광개토대왕 릉이다 라고 단정 짓지는 않습니다.
태왕릉이 광개토대왕의 무덤이라 보는 견해 로는
1. 광개토대왕비가 근처에 있다는 것.
2. "호태왕"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동탁(방울 소리를 내는 청동제 제례용 도구)이 출토되었다는 것.
3. 태왕릉의 계단식 적석총 형태 및 출토된 유물들을 시대적 배경으로 보았을 때 대략 4~5세기 유물들이라는 점.
태왕릉이 광개토대왕의 무덤이라고 단정지을수 없다 주장하는 견해
1. "호태왕"의 문구 : 호태왕이라는 문구가 광개토대왕 만을 의미하는 문구 인건지
아니면 뛰어난 왕이라는 뜻으로 사용 되는 일반 명사용 호태왕인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2. 계단식의 적석총 형태와, 4~5세기 유물들로 추측해볼 때
고국양왕의 무덤일 가능성도 있고 이러한 주장들을 펼치는 사람들은
장군총을 광개토 대왕의 무덤일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장군총은 장수왕의 무덤일 거라는 주장이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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