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호족의 시대8 : 원종과 애노의 난

설레발유전자 2023. 7. 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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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최초의 농민 봉기 : 원종과 애노의 난

 

원종과 애노의 난은 신라 하대 농민 반란 중 가장 의미있고 영향력이 있는 반란 이었으며 농민 반란 중에는 한국사 최초의 농민 반란이었다 .

 

상주시 지도

 

진성여왕 3889년에 일어난 농민 봉기이고 현재 경상북도 상주지역인 사벌주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인데 당시 사벌주 지역은 신라시대 때 주민들 이주부터 시작해서 역사적으로 많은 지원과 발전이 있었던 지역이었다.

 

진성여왕

 

지리적으로 한쪽에 치우쳐 있었던 수도 금성을 육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군사적으로도 많은 충원과 주민들의 이주가 있었던 지역이라 사벌주에서의 반란은 신라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코앞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처럼 꽤나 위험하고 충격적인 반란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경상도라고 할 때 경과 상이 경주랑 상주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것인데 그 정도로 경주랑 상주는 한반도에서 오랜 역사를 함께 했다고 볼수 있다.

 

 

조선시대 경주 지도

 

 

원종과 애노의 난이 발발한 원인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최 전성기를 누렸던 신라 중대가 지나 36대 혜공왕때 대공의난, 96각간의 난 이라고도 불리는 큰 난리를 겪고 신라는 하대로 접어들면서 신라의 근간이었던 골품제가 흔들리고 그러면서 신라중앙정부는 서서히 힘을 잃어가던 중 51대 진성여왕이 즉위하고 3년 후 신라의 중앙정부는 결국 지방으로부터 세금이 걷히지 않는 심각한 사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에 중앙정부는 지방에 사자를 파견하여 세금을 걷으려고 한다. 그런데 지방의 관리들은 중앙정부에 보내는 세금을 본인들의 재력으로 해결하지 않고 농민들과 백성들을 더더욱 수탈하는 그런 행태를 보인다. 이에 견디지 못하고 신라 곳곳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중 대표적인 농민 봉기가 사벌주의 원종과 애노의 난이다.

 

사벌주에서 봉기한 원종과 애노를 진압하기 위해서 신라 중앙정부는 나마 영기라는 사람을 토벌대로 보내게 되는데 이 나마라는 직책은 신라의 17관등 중 11번째 정도로 5두품 이 할 수 있는 직책으로 그렇게 높지도 낮지도 않은 직책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신라 정부는 원종과 애노의 농민봉기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신라 17관등

결국 나마 영기는 사벌주의 엄청난 농민봉기군들의 기세에 눌려 진압을 하지 못하고 결국 반란 집압을 하지 못하였다는 죄목으로 처형 당하게 됩다.

 

또한 당시 사벌주 촌주였던 우련이라는 사람도 반란 도중에 전사하였는데 남아있는 기록에 보면 그의 10살 된 아들이 사벌주의 촌주자리를 이어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결국 신라 조정이 원종과 애노의 난을 진압 했다라는 기록은 없다. 그리고 그 후에 어떻게 되었다는 기록 또한 없어서 추후에 원종과 애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2가지로 추측할 수밖에 없는데...

 

첫째 : 결국 다시 파견된 중앙정부에 의해 진압 되었다라는 것과

 

둘째 : 사벌주지역에 원래 있던 호족 세력에게 진압되었다는 두 가지 가설이 있다.

 

사벌주는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가 실효지배를 하게 되고 사벌주는 호족의 시대에 있어 왕건과 견훤이 패권을 차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역이 된다.

 

원종과 애노의 난이 한국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3가지가 있는데

 

첫째 : 최초의 농민봉기 였다는 점

둘째 : 이 봉기로 인해 신라 중앙정부의 골격인 골품제가 무너졌다는 것

셋째 : 새로운 세력인 호족이 등장했다는 것

 

때문에 원종과 애노의 난이 한국사에 있어 중요하게 조명 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