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호족의 시대 7 - 양길(북원경 호족 : 현재의 원주)

설레발유전자 2022. 10. 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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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 진성여왕 말기 원종과 애노의난을 시작으로 여러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그 중 북원경(지금의 원주) 지역에서 발흥한 호족이 있었다... 그의 이름 양길 ...

당시 북원경은 신라의 9주 5소경에서 5소경 중 하나로 행정지역상 중요한 지역중 하나였다...

이런 지역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반란을 일으킨 양길은 결코 작은 세력은 아니었다...

양길에 대한 기록은 궁예의 기록에서 등장하는데

궁예가 처음에는 죽주(지금의 안성)의 기훤의 휘하에 있다가 기훤이 궁예를 별로 달가워 하지 않자

양길의 휘하로 들어 갔다는 기록에서 양길이 등장한다.

후에 양길을 궁예를 신임해 큰 병력을 궁예에게 주어 북진을 명하였다...

이에 궁예는 명주의 김순식을 시작으로 패서호족 세력 왕륭 왕건 세력까지 휘하에 두면서 거대 세력으로 발돋움하고

양길에게서 독립해 독자적인 세력을 이루었다...

이에 양길은 궁예를 토벌하기 위해 비뇌성 이라는 곳에서 둘이 한판 붙게 된다...

이게 그 유명한 비뇌성 전투!!!

이 비뇌성 전투를 사람들은 삼국지연의의 조조와 원소가 붙은 관도대전에 많이들 비유한다...


드라마 태조왕건에서의 양길 역

비뇌성 전투 (899년 7월)

당시 비뇌성의 위치를 죽주산성이라고 예측을 하는데 이 죽주산성은 예전에 궁예가 양길 휘하로 들어가기 전 기훤의 근거지였다...

이로써 궁예는 죽주산성에 대한 지리에 이미 밝았고 당연히 전투의 전개는 궁예에게 유리하게 흘러간다...

당시 궁예의 영토는 명주북부(현재의 강릉지역)+삭주북부(현재의 철원지역)+한주북부(현재의 경기북부, 황해도 지역) 이었고

양길의 영토는 삭주남부+한주남부+명주남부 였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때 두 세력의 병사들도 막상 막하였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결국 비뇌성 전투는 궁예의 대승으로 마무리가 되고 양길의 잔여 세력들 까지 궁예가 접수하면서 한반도의 실질적인 세력자는 궁예와 견훤이 거머쥐게 되었다...

비뇌성 전투는 누가 한반도 중부까지의 주인이 되느냐 하는 아주 중요한 전투 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기록이 없다 ㅠㅠ

그래서 추후 양길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고 그저 궁예가 왕건을 시켜 양길 잔여 세력들을 흡수 하였다는 것 정도만 기록에 있다...


비뇌성이라고 추정하고 있는 안성의 죽주산성

견훤과 양길과의 관계

양길은 후삼국시대의 3영웅(궁예, 왕건, 견훤)과 모두 관계가 있는데 궁예나 왕건은 앞서 언급한것처럼 관계가 있었고 견훤같은 경우는

892년 무진주를 차지하고 본인이 칭왕 하던 시절 양길에게 관직을 주어 비장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둘이 활동 지역도 다르고 추후에 다른 어떤 기록도 없는 걸로 봐서는

양길이 그런 견훤을 그냥 무시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