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말여초 호족의 시대에서 이사람을 빼놓고 호족을 논한다면 그건 반쪽짜리 이야기 일 것이다...
오늘 다룰 호족은 당시 명주군왕(현재 강원도 속초부터 삼척까지의 범위)이라고 불려왔던 김순식 이야기를 할 것이다...
김순식의 출생에 대해서는 확실한것은 없다... (참 고려 이전의 기록들이 너무 없다... ㅠㅠ) 그러나 명주지역에서 군왕으로 있을 정도면 김주원의 후손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고 그렇다면 김순식은 강릉김씨일것이다 라고 추측만 하고 있다...
- 강릉김씨의 시조 김주원은 누구인가?
김순식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의 시조인 김주원의 이야기를 안하고 넘어갈수가 없다...
김주원은 통일신라 진골 귀족이자 신라 김씨 대부분이 내물왕계 인것과 다르게 김주원은 태종 무열왕(김춘추)의 직계였다... (김법민(문무왕)의 동생 김인문의 후손 임)
그의 작위는 명주군왕 이었는데... (김순식이 그의 후손이 아닐까 추측해보는 대목이다...)
그러나 명주 군왕이라는 작위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는 찾아 볼수가 없어 이 작위가 실제로 존재 하였는지는 미지수 이다... (뭐 하나 정확한게 없다... ㅠㅠ)
그렇다면 명주군왕이라는 칭호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
이는 조선시대에 쓰여진 [동국여지승람] 이라는 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지리서인 이책의 특성상 당대 까지 내려오던 전설을 기반으로 작성했을 가능성이 있어
이때 이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던 구전을 바탕으로 명주군왕이라는 칭호가 나왔을 것이다...
김주원은 또한 신라의 왕이 될뻔하였으나 아주 안타깝게 왕이 되지 못한 인물인데 그의 일화는 나중에 자세히 다루겠다... (지금은 김순식의 이야기를 해야하니... 삼천포로 빠질뻔했다... )
김주원이 명주군왕으로 활동 하였던 시기가 700년대 중후반이었고 김순식이 명주지역 최대 실권자였던 시기가 800년대 후반에서 900년대 초반인데
만약 김순식이 김주원의 후손이 아니라면 800년대 초반에 명주에서 쿠테타가 일어나 김순식이 실권을 장악했다는 이야기 인데 이는 가능성이 아주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김주원의 아들 김헌창이 웅천주(지금의 공주지역)에서 난을 일으켰다는 기록은 하였으면서 김주원 세력권에서 일어난 반란은 기록을 안했다??
또한 비록 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신라에서 아직도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김주원의 지역에서 쿠테타가 일어났을때 기록이 없다??
이는 조심 스럽게 반란은 없었고 김순식은 김주원의 후손이다 라고 추측해 본다...
여하튼 김순식의 아버지 허월을 진작부터 불교계에 귀의해 명주지역을 다스리지 않았고
김순식은 비교적 젊을 때부터 명주 지역을 다스렸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지역에 김예라는 자도 있는데 이 자도 명주 지역의 영향력 있는 사람이어서 추후 김순식과 함께 왕씨성을 하사 받아 왕순식, 왕예가 되는데 이둘이 혈연관계인지? 단순히 동맹적 관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2. 궁예와의 만남 그리고 그의 신하가 되다.
궁예는 처음에 죽주(현재 경기도 안성)의 기훤 휘하에 있다가 기훤이 자신을 별볼일 없이 여기자 북원경(현재 강원도 원주)의 양길의 휘하로 들어갔다...
양길은 궁예에게 정말 말도 안되게 적은 군사를 내주면서 북쪽 지역의 정벌을 지시했고 그럼에도 궁예는 명주 군왕 김순식을 한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자신의 세력으로 흡수 했다... (what??)
이 대목이 참으로 의문스러운데... 당시 김순식이 다스리고 있는 명주는 통일신라의 9주 중에서도 땅 덩어리가 크면 컸지 결코 작은 지역은 아니었으며
김순식 휘하의 군사들도 적은 편이 아니었던게 후에 고려가 후백제를 완전히 멸망시키는 일리천 전투때 거의 2만에 가까운 병사를 전쟁에 지원한 것을 보면 당시 김순식의 군사력은 궁예의 군사력을 압도하고도 남는 병력이었는데 ... 이런일이 벌어져버렸다... (궁예는 마성의 남자인가? ) 너무 터무니 없이 궁예의 휘하로 들어가서 추측하는 바로는
1) 신라 왕족에 대한 악감정을 서로 이해하는 관계였을 것이다...
신라의 왕이 될 뻔 했다가 되지 못한 김주원의 집안에서는 당연히 신라 왕실에 감정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동병상련 이라고 했던가? 궁예도 삼국사기 궁예열전에서 보면 신라 헌안왕의 서자였다고 나오는데 단오날 태어났다고 하여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할뻔하고 그떄의 사고로 한쪽눈을 잃었기에 당연히 신라 왕실에 감정이 좋지 않았다...
아마 이둘은 이러한 모종의 감정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2) 김예와 궁예 ...
명주 지역의 또 다른 세력가인 김예의 예와 궁예의 예를 살펴보면 두 사람이 혹시 비슷한 항렬이나 같은 집안의 사람이 아니었을까? 살짝 의심해본다... 물론 같은 이름이라고 너무 터무니 없이 막 가져다가 붙이는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궁예가 헌안왕의 서자면 김씨일테고 김예 또한 무열왕계의 손자라면 김씨이기에 서로 약간의 혈연이 있었을 수도 있기에 ...
결국 김순식은 궁예의 휘하로 들어갔고 순식간에 세력이 강해진 궁예는 그 길로 송악(현재 개경)의 패강진 호족 왕건의 세력까지 흡수하여 막강한 힘을 가진 호족이 되었다...
이에 본인의 세력보다 궁예의 세력이 점점 더 커지고 독자적인 활동을 하는 궁예에게 분개한 양길은 궁예와 비뇌성(경기도 안성시 근처 성)에서 한판 붙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3. 궁예와의 의리를 지킨 김순식이라는 남자
궁예는 후고구려를 송악(지금의 개성)에 건국하고 왕권 강화를 위해 국호를 마진으로 바꿨다가 태봉으로 다시 바꾼 후 도읍을 철우너으로 옮겼다... 그리고 본인의 꿈인 미륵정토를 이루기 위한 왕권강화를 시작하는데 이에 태봉국의 근간 세력인 패서호족들의 반발을 많이 샀는지
918년 왕건에 의해 축출되고 도망치다가 보리이삭을 훔쳐먹던중 백성들에게 몰매맞아 죽게 된다...
이에 태봉국은 왕건에 의해 고려로 국호를 변경하였는데 김순식은 왕건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김순식은 역성 혁명을 일으킨 왕건에 협조 하지 않았으며 독자적인 세력으로 4년간을 지속했다...
왕건은 고려 건국후 몇년 뒤 견훤과 공산 전투(대구의 팔공산 부근)에서 크게 패해 후삼국의 판도를 견훤에게 빼앗긴다...
영토도 전라 충청 경상 이렇게 후백제가 차지하고 대야성 전투로 경애왕을 죽이고 거의 멸망직전까지 간 신라까지 당시 후삼국의 강대국은 견훤의 후백제 였다...
왕건의 영토는 고작 원래 고향이었던 송악쪽의 패서와 삭주 부분 (삭주는 지금의 철원 정선) 삭주는 이때 당시도 개발이 많이 되어 있지 않아(험준한 사세 때문에 ㅠㅠ) 실질적으로 왕건은 수세에 몰려 있었다...
이에 명주의 김순식의 귀순은 왕건에게 있어 정말이지 천군만마를 얻은것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왕건은 김순식과 김예에게 왕씨 성을 하사 하였고 그들의 이름은 그때 부터 김순식, 김예는 왕순식, 왕예가 되었다...
후로 신라의 귀부, 상주지역 호족이자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의 귀부, 등 눈치만 슬슬 보고 있고 그나마 친신라적 태도를 취하고 있었던 여러 호족들이 고려로 귀부했다...
거기에 발해의 대광현 까지 고려로 귀부해 고려는 이름처럼 고구려를 계승하는 정통성을 가지게 되었다...
4. 일리천 전투 (936년)
처음 김순식은 왕건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왕건은 그의 아버지인 허월대사를 모셔다가 설득을 권유드렸고 이에 허월이 김순식을 설득...
결국 김순식은 왕건의 휘하에 들어가게 된다...
그 후 후백제는 견훤의 아들 견신검이 아버지를 금산사에 가두고 스스로 왕이 되는 쿠테타를 일으킨다...
이에 분개한 견훤은 금산사를 탈출하여 왕건에게 귀부했고 왕건은 그런 견훤을 상부(아버지 격)라고 하여 극진히 대접했다...
기리고서는 견훤을 앞세워 후백제를 정벌하는데 이때 이 전투가 일리천에서 벌어진 (지금의 구미 일대) 일리천 전투이다...
이 일리천 전투때 김순식은 거의 2만에 가까운 병력을 출동 시켰고 이 어마어마한 김순식의 군대는 후백제 군영을 쑥대밭으로 만드는데 큰 공을 세웠다...
* (일리천은 김천시 수도산에서 발원해 김천시를 거쳐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서 낙동강을 만남 , 현재는 감천 이라고도 불리고 감문천이라고도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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