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국립 대구 박물관 ... 방문기 1

설레발유전자 2022. 8. 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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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첫째주에 올렸어야 되는데 조금 바빴어서 ㅠ ㅋㅋㅋ 8월 1째주에 대구 출장을 다니던 중

시간이 조금 남아서 근처를 돌다가 국립 대구 박물관에 가 보았다...

국립 박물관은 입장료가 무료이기에 ~

어떤 전시를 하고 있는지 기본 전시는 어떤것이고 기획 전시는 어떤 것인지 매우 궁급했다...

국립대구박물관 입구 1


국립대구박물관 주차장 (평일이라 그런지 차가 별로 없어서 아주 좋았음)

이용 안내

- 이용시간 : 화 ~ 일요일, 공휴일 (09:00~18:00) 야간개장은 당분간 운영하지 않음.(별도 공지시 까지)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단, 월요일이 공휴일일 때에는 공휴일 다음의 첫 번째 평일
- 관람료 : 무료 (단체관람은 사전에 예약해줘야됨 (우리문화체험실 아롱다롱 방은 별도 예약이 필수임))

오시는 길

- 시내버스 : 순환3, 순환3-1, 234, 349, 449, 524, 수성1, 수성1-1, 수성3, 수성3-1, 100, 100-1
- 지하철 : 대구지하철 2호선 만촌역 3번 출구에서 시내버스로 환승
- 자가용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21

1. 국립대구박물관의 기본 전시

기본 전시는 어느 국립 박물관을 가도 그렇듯 한국사의 전반적인 역사적 흐름 뿐만 아니라 지역적인 특색을 가미해

관련된 유물이나 지역의 설화나 유례등을 설명과 전시 위주로 하는데 여기 대구 박물관도 마찬가지였다...

기본 관은 대구 경북의 고대문화실, 중세문화실, 이렇게 있고 특이하게 복식 문화실이 있었음... 그리고 기획전시실은 두 관 이나 ~~!!!

와우 ~!!!

2. 고대문화실

대구 경북의 고대문화실 입구


사진에서와 같이 대구 경북이 과거 가야와 신라의 영토 였던 만큼 신라, 가야의 유물들이 많이 있었다...

가야는 나라라고 하기 조금 그러니까 (연맹체설과 제국설 이렇게 나뉘긴 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연맹체 인걸로.., 사실 가야도 할 이야기가 많다... 두 나라는 이라고 할려다가 그만....)

신라와 가야는 지역적으로는 비슷하게 위치하고 있어도 확실히 두 곳의 유물들의 형태는 다른 모습을 보여 참 신기 하였다...

대구 경북의 석기시대

이것이야 말로 국사 교과서에서 봤던... ㄷㄷㄷ
민무늬 토기 이런 것인가... ㄷㄷㄷ
잘 보면 저기 안에 빗살무늬 토기도 있음 ...


그런데 누가 뭐라해도 가야하면 삼한 시대의 변한 시절부터 아주 유명했지 ...

바로 가야의 철제 기술 !! 철하면 뭐다!! 바로 쇠!!! 이 철제 기술이 발달한 가야는 쇠가 중요하였는지

금관국의 초대 왕이자 김해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성씨도 金 이거 인걸 보면

고대 역사에서 쇠의 가치는 아주 어마어마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기로서는 아주 좋지 !!)


가야 같은 경우는 현존하는 한국의 기록에는 자세한 기록이 없어

거의 고고학에 의지해서 각 가야의 실체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다행이 경상도 지역에 많은 가야의 고분군들이 있어 가야의 역사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

가야의 고분군


신라와 가야의 토기 : 대구와 고령지역은 무덤에 넣는 토기 모양이 다르다...낙동강 동쪽에 위치한 대구지역 고분에서는

신라 수도인 서라벌에서 만들었거나 엇갈리에 뚫은 굽구멍을 지닌 굽다리 접시가 사용 된다...

양쪽에 귀가 달린 항아리도 이 지역의 독특한 토기 이다...

반면 낙동강 서쪽에 위치한 대가야 고분에서는 다양한 높낮이의 그릇 받침과 물결무늬가

새겨진 긴 목 항아리가 쓰였음...

신라와 가야의 토기 사진의 오름쪽이 가야 왼쪽이 신라의 토기 이다.

3. 중세문화실


중세문화실을 보면서 대구, 경북의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보았는데 2가지가 참 인상 깊었다...

1) 대구, 경북지역이 고려시대때도 불교의 성지였는데 조선시대때도 유교의 성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불교사회,문화와 유교사회,문화로 두 시대는 사회와 문화에 많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조선 건국 초 억불숭유 사상이라하여 불교는 억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그런 정책을 펼쳤는데

이 정책 대로라면 고려시대때 불교가 활성화되었던 대구 지역을 조선시대때는 억불해야 하지 않나 ??

그런데 조선시대때도 유교 사림의 대들보인 영남학파의 근간이 되는 곳이 대구 경북이다 라는 박물관의 설명을 보고 조금 의아 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은 그 다음에 풀리는데 ...

2) 소수서원이 있는 자리는 고려시대 때 사실 숙수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였다...

여기서 앞의 의문이 풀렸다... 그렇지 ... 그랬겠지... 기존의 불교의 흔적을 모두 없애고 유교의 흔적으로 바꿨겠지 ...

대구가 워낙 교통도 좋고 예로부터 낙동강을 끼고 있어 수송 운송도 좋고 여러가지 최적의 조건인데

단지 불교 관련으로 활성화 되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정치 경제적으로 활성화된 지역을(세수도 많이 걷혔을 것인데... ) 폐지하는 것은 많은 손해가 따랐을 것이다...

그래도 문화사 적인 측면에서는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마치 중동지역에서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메소포타이아 문명의 유물들을(지구라트 등) 서슴없이 폭파 시키는 것과

같은 양태로 느껴 졌다...

영주 금산사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유물들

영주 숙수사가 남긴 유물들